
지난주, 채식주의를 지향하는 한 친구가 함께 와인을 마시다가 내게 물었다. “와인은 포도로만 만드니까 당연히 비건이지?”
나는 잠시 망설였다.
대답은 간단해 보였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랫동안 소비자들에게 와인은 자연 그대로의 술이라는 인식을 심어왔다. 자연에서 얻은 포도를 발효해 만든 술, 그래서 와인은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산물처럼 여겨진다.
그렇다면 와인은 정말 비건(Vegan)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한다. 포도는 식물이고, 발효 또한 자연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와인의 모습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면, 와인은 비건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진정한 비건은, 재배단계부터 동물성 퇴비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많은 소비자들은 와인을 식물성 발효주로 이해한다. 그러나 실제 와인 생산 과정은 단순한 발효에서 끝나지 않는다. 와인은 발효 이후에도 여러 단계를 거치며, 그 과정에서 품질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처리가 이루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단계가 바로 정제(Fining) 과정이다.
맑은 와인 뒤에 숨은 비밀을 알면 비건와인의 이해가 쉽다.
우리가 구입해서 마시는 와인은 대부분 투명하고 맑다. 보르도의 깊은 루비색, 샤블리의 영롱한 황금빛 그 완벽한 투명도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걸까? 아니다. 와인의 완성인 발효 단계에서는 알코올과 함께 단백질, 효모 찌꺼기, 주석산염, 타닌 같은 미세 분자들이 생겨난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와인을 탁하게 만들고 거친 식감을 줄 수 있어, 많은 생산자는 이를 걸러내는 정제 과정을 거친다. 그대로 두면 탁하고 와인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이때 와인 생산자들은 불순물을 응고시키기 위해 자석 역할을 하는 정제제를 투입하는데, 전통적이고 대표적으로 가장 널리 쓰여온 것들이 바로 동물성 성분이다.
달걀 흰자는 레드와인의 거친 타닌을 제거한다. 젤라틴은 동물 뼈나 가죽에서 추출해 불순물을 응고시킨다. 우유 단백질인 카제인은 화이트와인을 정제하고, 물고기 부레에서 얻은 아이싱글라스는 최고급 투명도를 만든다.
성분이 아니라 과정의 문제이다. 물론 불순물과 결합해 바닥으로 가라앉으며, 최종 병입 단계에서는 거의 남지 않는다. 화학적으로만 보면 와인 속에 동물 성분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왜 비건이 아닐까?
비건의 핵심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 생산 과정에서 동물을 이용했다면, 그 결과물이 아무리 깨끗할지라도 비건의 가치관과는 멀어지게 된다.

비건 와인이 선택한 착한 대안들
그렇다면 비건 와인은 어떻게 투명해질까? 그 답은 흙과 돌, 그리고 식물에 있다. 여기에는 생산자의 철학과 첨단 양조 기술이 담긴 다양한 대안이 존재한다. 비건 와인은 때로 조금 덜 투명할 수 있고, 병 바닥에 자연스러운 침전물이 남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결점이 아니다. 오히려 생산 과정의 투명성과 생명 존중이라는 생산자의 철학이 담긴 증거이다.
<광물 기반 정제제 및 활성탄 기반 정제제>
가장 보편적인 비건 방식은 흙과 돌에서 온다. 화산재 성분인 벤토나이트(점토)는 단백질 제거의 교과서라 불리며 주로 화이트 와인에 사용되며 가장 널리 사용되는 비건 정제제 중 하나다. 미세 해조류 화석인 규조토나 실리카 겔은 풍미를 해치지 않고 불순물을 걸러낸다. 화이트 와인의 갈변, 황변, 색이나 향을 교정할 때는 활성탄(숯)을 활용하기도 한다.
<식물성 단백질 기반 정제제>
가장 각광받는 것은 완두콩과 감자 단백질이다. 완두콩은 타닌 조절에 효과적이며, 감자는 알레르기 유발 걱정 없이 와인의 색상을 맑게 정돈해 준다. 우유 대신 완두나 콩에서 추출한 식물성 카제인을 쓰기도 한다.
<합성 고분자 정제제>
최근에는 포도 찌꺼기에서 추출한 식물 세포벽 다당류를 활용하는 친환경 기술까지 등장했다. 반면, 기술적 비건이지만 환경 이슈(미세플라스틱)가 있는 PVPP(합성 고분자)나 원료 출처에 따라 논란이 되는 키토산 등은 생산자들이 더 신중하게 선택하는 추세이다.
트렌드를 넘어 가치 소비로
우리는 지금까지 와인을 완성된 제품으로 소비해왔다. 병에 담긴 상태의 와인을 기준으로 품질을 판단하고, 브랜드와 가격을 통해 가치를 평가해왔다. 이제 소비자들은 그 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고 있다.
이렇듯 비건 와인은 단순히 채식주의자를 위한 카테고리가 아니다. 와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우리가 마시는 한 잔에 담긴 윤리적 무게를 고민하게 만드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비건 와인은 이러한 변화의 출발점에 놓여 있다.
특정 소비자만을 위한 선택지도 아니다. 그것은 와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하나의 기준이며, 소비자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보여준다.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와인의 진실이지만 단순히 마시는 즐거움에 그치지 않고, 생산의 윤리와 지속 가능한 미래까지 함께 음미하는 것, 바로 현대 비건 와인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정한 메시지일 것이다.
오늘 당신의 잔에 담긴 와인이 그 이상의 가치로 다가오길 바란다.
다음 칼럼에서는 달걀 vs. 점토 — 정제 방식이 와인 맛까지 바꿀까? 연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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